-1969년 AI 및 로봇 황금기
0.1 핵심 연구 요약
| 연도 (Year) | 주요 발표 (Major Announcement) | 핵심 인물 (Key Figures) | 주요 기여 및 의의 (Primary Contribution & Significance) |
|---|---|---|---|
| 1961 | 유니메이트 (Unimate) | George Devol, Joseph Engelberger | 최초의 산업용 로봇, GM 공장 도입. 공장 자동화 시대의 개막. |
| 1965 | 덴드랄 (DENDRAL) | Edward Feigenbaum, Joshua Lederberg | 최초의 전문가 시스템. 특정 분야(화학)의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 해결. |
| 1966 | 엘라이자 (ELIZA) | Joseph Weizenbaum | 최초의 챗봇. 키워드 매칭을 통한 자연어 처리의 가능성과 한계 제시. |
| 1966 | 셰이키 (Shakey the Robot) | Charles Rosen, Nils Nilsson, Peter Hart | 지각, 계획, 행동을 통합한 최초의 자율 이동 로봇. |
| 1968 | A* 탐색 알고리즘 (A* Search Algorithm) | Peter Hart, Nils Nilsson, Bertram Raphael | 휴리스틱을 이용한 최적 경로 탐색 알고리즘. 현대 경로 탐색의 기반. |
| 1969 | “퍼셉트론” (Perceptrons) | Marvin Minsky, Seymour Papert | 단층 퍼셉트론의 한계(XOR 문제) 증명. 첫 번째 ’AI 겨울’의 도래에 영향. |
1. 낙관주의와 가능성의 10년
1960년대는 인공지능(AI) 분야가 1950년대의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결과물을 창출하기 시작한 결정적 전환기였다.1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탄생한 이후, 이 분야는 엄청난 낙관주의에 휩싸였다.2 연구자들은 기계가 곧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할 것이라 믿었고, 이러한 기대감은 정부와 학술 기관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연구 자금을 유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2 이 시기는 AI가 단순한 계산 도구를 넘어 대수학 문제를 풀고, 기하학 정리를 증명하며,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이론이 현실로 구현되는 역동적인 10년이었다.1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 환경의 중심에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있었다. DARPA의 자금 지원 전략은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했는데, 구체적으로 정의된 프로젝트가 아닌 혁신적인 개인과 아이디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었다.1 이 접근법은 MIT, 카네기 멜런 대학교(CMU), 스탠퍼드 연구소(SRI)와 같은 핵심 연구 기관들이 실패의 부담 없이 과감한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1 이처럼 유연하고 신뢰 기반의 자금 지원 모델이 있었기에 1960년대의 AI 연구는 특정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훗날 AI 분야의 근간을 이루게 될 다양한 패러다임을 탐구할 수 있었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상징적 추론, 신경망, 지식 기반 시스템, 그리고 통합 로봇 에이전트와 같은 핵심 연구 성과들을 연대순으로 분석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2. 산업의 변혁: 최초의 로봇 팔, 유니메이트
1960년대 AI 및 로봇공학의 발전이 낳은 가장 가시적이고 산업적으로 파급력이 컸던 성과는 단연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Unimate)’의 등장이었다. 유니메이트의 탄생은 발명가 조지 데볼(George Devol)의 기술적 비전과 기업가 조셉 엥겔버거(Joseph Engelberger)의 상업적 통찰력이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데볼은 1954년 ’프로그램화된 물품 이송 장치(Programmed Article Transfer)’라는 이름으로 로봇 팔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고, 엥겔버거는 이 기술의 잠재력을 간파하여 1956년 세계 최초의 로봇 제조사인 유니메이션(Unimation Inc.)을 공동 설립했다.4
역사적인 순간은 1961년, 최초의 유니메이트가 뉴저지 주 유잉 타운십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GM)의 다이캐스팅 공장 조립 라인에 설치되면서 찾아왔다.5 약 4,000파운드(약 1.8톤)에 달하는 이 거대한 유압식 로봇 팔은 인간 작업자에게 매우 위험한 임무를 부여받았다.6 주된 작업은 뜨겁게 달궈진 다이캐스팅 부품을 집어 옮기고, 이를 차체에 용접하는 것이었다.7 당시 이러한 작업은 유독가스에 의한 중독이나 고열의 부품으로 인한 심각한 부상 위험을 동반했다.6 엥겔버거는 의도적으로 더럽고(Dirty), 단조로우며(Dull), 위험한(Dangerous) 이른바 ‘3D’ 작업을 로봇의 첫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9 이는 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제조업체에게는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작업장 안전 확보라는 명확한 가치를 제공하는 탁월한 시장 진입 전략이었다. 로봇이 인간의 ‘좋은’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나쁜’ 작업 환경에서 해방시킨다는 서사를 구축함으로써 산업 자동화의 문을 성공적으로 열었던 것이다.
유니메이트의 작동 원리는 자기 드럼 메모리(magnetic drum memory)에 저장된 단계별 명령어를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방식이었다.6 작업자가 로봇 팔을 수동으로 움직여 각 지점의 좌표를 기록하면, 로봇은 그 경로를 그대로 반복하는 ‘점대점(point-to-point)’ 제어 방식을 사용했다.6 이 기술은 현대 로봇 티칭(teaching) 기술의 원형이 되었다. GM 공장에서의 성공은 곧바로 대량 생산으로 이어졌고, 유니메이션은 용접, 인쇄, 조립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 모델로 사업을 확장했다.5 나아가 1966년 엥겔버거의 일본 방문은 일본 산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68년 가와사키 중공업과의 기술 제휴 계약으로 이어져 일본이 산업용 로봇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4 이처럼 유니메이트는 단순한 기계를 넘어, 전 세계 제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공장 자동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역사적 이정표였다.
3. 지능의 모의실험: 핵심 패러다임의 등장과 충돌
1960년대는 산업 현장의 물리적 자동화뿐만 아니라, 기계가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지능을 구현하려는 두 개의 상이한 철학적, 기술적 접근법이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다. 하나는 인간의 논리적 사고 과정을 기호 조작으로 모델링하려는 ’상징주의(Symbolism)’였고, 다른 하나는 뇌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하여 학습 능력을 구현하려는 ’연결주의(Connectionism)’였다.
3.1 문제 해결의 논리: 뉴얼과 사이먼의 범용 문제 해결사
상징주의 AI의 대표적인 초기 성과는 앨런 뉴얼(Allen Newell)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1957년에 개발하여 1960년대 내내 큰 영향을 미친 ’범용 문제 해결사(General Problem Solver, GPS)’였다.10 GPS는 특정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형식화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으로, 인간의 문제 해결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GPS의 핵심 방법론은 ’목표-수단 분석(means-ends analysis)’이었다.10 이 접근법은 현재 상태(current state)와 목표 상태(goal state) 사이의 ’차이(difference)’를 정의하고,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조작자(operator)’를 적용하는 과정을 재귀적으로 반복한다.12 만약 직접적인 조작자 적용이 불가능하면, 해당 조작자를 적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새로운 ’하위 목표(subgoal)’로 설정하여 문제를 더 작은 단위로 분해한다.10 예를 들어, 논리 정리 증명이나 하노이의 탑과 같은 잘 정의된 문제에서 GPS는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12
GPS가 AI 역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문제 해결 ’전략’을 문제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분리한 최초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10 즉, 목표-수단 분석이라는 범용적인 추론 엔진(engine)과, 특정 문제의 규칙 및 조작자들을 정의한 데이터(input data)를 독립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는 현대 AI 시스템 아키텍처의 기본 개념을 제시한 선구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GPS는 명확한 한계에 부딪혔다. 문제의 복잡성이 조금만 증가해도 탐색해야 할 경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조합적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 문제에 직면하여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다.10 GPS의 실패는 지능이 단지 범용적인 논리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으며, 방대한 양의 특정 영역 지식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3.2 인공 뉴런의 약속: 로젠블라트의 퍼셉트론
상징주의와 대척점에 있던 연결주의 진영에서는 1950년대 후반 프랭크 로젠블라트(Frank Rosenblatt)가 개발한 ’퍼셉트론(Perceptron)’이 1960년대 초반을 뜨겁게 달구었다.15 퍼셉트론은 뇌의 뉴런 작동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초창기 인공 신경망 모델로, 다수의 입력 값에 각각의 ’가중치(weight)’를 곱한 값을 모두 합산하여 특정 임계값(threshold)을 넘는지 여부에 따라 출력을 결정하는 이진 분류기(binary classifier)였다.16
로젠블라트의 핵심적인 기여는 퍼셉트론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퍼셉트론 학습 규칙(Perceptron learning rule)’을 제안한 것이다.18 이는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의 일종으로, 주어진 입력에 대해 퍼셉트론이 잘못된 출력을 내놓을 경우, 정답과의 오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중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오류 수정 알고리즘이었다.16 가중치 업데이트 규칙의 수학적 표현은 다음과 같다.19
\mathbf{w}(n+1) = \mathbf{w}(n) + \eta [d(n) - y(n)]\mathbf{x}(n)
여기서 \mathbf{w}(n)은 시점 n에서의 가중치 벡터, \mathbf{x}(n)은 입력 벡터, d(n)은 원하는 출력(정답), y(n)은 실제 출력, 그리고 \eta는 학습률(learning rate)을 의미한다. 로젠블라트는 학습 데이터가 ’선형적으로 분리 가능(linearly separable)’하다면, 이 학습 규칙이 반드시 정답을 찾는 가중치로 수렴함을 증명했다(퍼셉트론 수렴 정리).18
이러한 학습 능력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 해군과 뉴욕 타임스와 같은 언론은 퍼셉트론이 “걷고, 말하고, 보고, 쓰며, 스스로를 복제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전자 컴퓨터의 배아“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를 쏟아냈다.15 퍼셉트론은 전문가의 지식을 코드로 입력하는 상징주의 방식과 달리, 데이터로부터 스스로 패턴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AI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혁명적인 모델이었다.
3.3 냉정한 현실 분석: 민스키와 페퍼트의 비판과 XOR 문제
퍼셉트론에 대한 열광적인 분위기는 1969년, AI 분야의 두 거장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와 시모어 페퍼트(Seymour Papert)가 출간한 책 “퍼셉트론(Perceptrons)“에 의해 급격히 냉각되었다.22 이 책은 퍼셉트론 모델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 분석을 통해 그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24
책의 가장 치명적인 증명은 단층 퍼셉트론(single-layer perceptron)이 ‘선형적으로 분리 불가능한(not linearly separable)’ 문제는 절대로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인 것이었다.23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XOR(배타적 논리합)’ 문제였다.22 XOR은 두 입력이 서로 다를 때만 참(1)을 출력하는 간단한 논리 연산이지만, 그 결과를 좌표 평면에 나타내면 어떠한 직선으로도 참과 거짓을 완벽하게 나눌 수 없다. 민스키와 페퍼트는 퍼셉트론이 본질적으로 데이터를 하나의 선(또는 고차원 공간의 초평면)으로 나누는 분류기이므로, XOR과 같은 문제를 원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23
GPS의 한계가 주로 컴퓨팅 성능이나 효율성의 문제, 즉 실용적 장벽으로 인식된 반면, 퍼셉트론의 XOR 문제는 원리적 불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증명이었기에 그 파급력은 훨씬 컸다. “퍼셉트론“의 출간은 연결주의 연구에 대한 비관론을 확산시켰고, 연구 자금 지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신경망 연구는 약 10년 이상 침체기를 겪게 되는데, 이 시기를 첫 번째 ’AI 겨울(AI Winter)’이라고 부른다.2 이 사건은 당시 AI 연구의 주도권이 연결주의에서 상징주의로 완전히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 지능형 시스템의 탄생
상징주의와 연결주의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안, 문제 해결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들이 등장하며 AI의 지평을 넓혔다. 이 시스템들은 범용적인 논리나 단순한 학습 규칙을 넘어, 특정 영역의 방대한 ’지식’을 활용하거나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정교하게 모방함으로써 지능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현대 AI 애플리케이션의 두 가지 핵심 축, 즉 ’깊이 있는 전문성’과 ’설득력 있는 인터페이스’의 원형을 제시했다.
4.1 지식 공학의 서막: 덴드랄 프로젝트
1965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시작된 덴드랄(DENDRAL) 프로젝트는 AI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중요한 이정표였다.26 컴퓨터 과학자 에드워드 파이겐바움(Edward Feigenbaum)과 노벨상 수상자인 유전학자 조슈아 레더버그(Joshua Lederberg)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유기화학자들이 질량 분석 데이터로부터 미지 유기 분자의 구조를 추론하는 과정을 자동화하는 것이었다.26
덴드랄은 세계 최초의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으로 평가받는다.7 전문가 시스템이란 특정 분야 전문가의 지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담아, 비전문가도 전문가 수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덴드랄의 핵심 방법론은 ‘생성 후 검증(generate-and-test)’ 패러다임이었다.26 먼저, ‘생성기(generator)’ 프로그램(CONGEN)이 주어진 화학식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분자 구조를 빠짐없이 생성한다.27 그 다음, 화학 전문가들의 지식, 즉 분자 구조의 안정성이나 질량 분석 패턴에 대한 경험적 규칙(휴리스틱)이 담긴 ’지식 베이스(knowledge base)’를 이용하여 가능성이 없는 후보 구조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해 나간다.29 이 과정을 통해 방대한 수의 가능성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몇 개의 후보만을 최종적으로 제시한다.
덴드랄의 성공은 AI가 인간 지능의 일반적인 원리를 찾는 것(GPS의 접근법)만이 아니라, 좁은 전문 분야에 대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전문가 수준의 성능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지식 공학(knowledge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AI 분야를 탄생시켰고, 이후 의료 진단, 광물 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시스템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27 덴드랄은 지능이 논리뿐만 아니라 ’지식’에 기반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4.2 대화의 환상: 바이첸바움의 엘라이자
덴드랄이 기계의 ’내부 지식’에 집중했다면, 1966년 MIT의 조셉 바이첸바움(Joseph Weizenbaum)이 발표한 엘라이자(ELIZA)는 기계와 인간의 ’외부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었다.31 엘라이자는 인간과 컴퓨터 간의 자연어 소통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역사상 최초의 ’챗봇(chatbot)’으로 알려져 있다.2
엘라이자는 인간의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패턴 매칭(pattern matching)’과 ‘치환(substitution)’ 기법을 통해 대화를 흉내 냈다.32 시스템은 특정 대화 시나리오를 위한 ’스크립트(script)’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스크립트에는 핵심적인 ’키워드(keyword)’와 그에 연관된 ’변환 규칙(transformation rule)’이 정의되어 있었다.33 사용자가 문장을 입력하면, 엘라이자는 문장 내에서 키워드를 찾고, 해당 키워드에 맞는 규칙을 적용하여 입력 문장의 일부를 재구성한 뒤 응답을 생성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나는 슬프다“라고 입력하면, ’나’를 ’당신’으로 바꾸고 문장 구조를 변형하여 “당신이 슬프다니 유감이군요“와 같은 응답을 만들어내는 식이었다.31
가장 유명했던 스크립트는 ’닥터(DOCTOR)’로, 내담자의 말을 그대로 되물어주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로저스 학파의 심리치료사를 모방했다.32 바이첸바움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의 비서를 포함한 수많은 사용자들이 엘라이자와의 대화에 깊이 몰입하며, 프로그램이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믿는 현상이 나타났다.32 바이첸바움은 이처럼 사용자들이 기계의 피상적인 반응에 인간적인 감정과 지능을 투사하는 현상을 ’엘라이자 효과(ELIZA effect)’라고 명명했다.36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는 AI 기술의 사회적, 윤리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가장 저명한 비판가 중 한 명이 되었다.35 엘라이자는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5. 통합된 지능체: 셰이키 로봇과 그 유산
1960년대 AI 연구의 정점은 개별적인 지능의 요소들을 하나의 물리적 실체 안에서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났다. 스탠퍼드 연구소(SRI)의 셰이키(Shakey) 로봇 프로젝트는 바로 그러한 야심 찬 비전의 산물이었다. 셰이키는 단순히 정해진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를 넘어,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자율 에이전트(autonomous agent)였다.
5.1 몸과 두뇌의 결합: SRI의 셰이키 프로젝트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진행된 셰이키 프로젝트는 AI의 다양한 하위 분야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융합하는 거대한 도전이었다.37 이전의 AI 연구들이 주로 소프트웨어(GPS, ELIZA)나 고정된 기계(유니메이트)에 머물렀던 반면, 셰이키는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로 인해 연구팀은 지능의 여러 구성 요소를 긴밀하게 통합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셰이키의 시스템은 계층적인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로 구성되었다.39
- 지각(Perception): 셰이키는 TV 카메라와 촉각 센서(범퍼)를 이용해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방, 문, 장애물(블록) 등을 식별하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38
- 계획(Planning):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셰이키는 ’스트립스(STRIPS, Stanford Research Institute Problem Solver)’라는 논리 기반의 자동 계획 시스템을 사용하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 순서를 생성했다.38 STRIPS는 고수준의 명령, 예를 들어 “플랫폼 위의 블록을 밀어 떨어뜨려라“와 같은 명령을 받으면, 이를 ‘플랫폼으로 이동하라’, ‘블록을 찾아라’, ’블록을 밀어라’와 같은 구체적인 하위 단계들로 자동 분해했다.38
- 행동(Action): 생성된 계획에 따라 셰이키는 바퀴 달린 모터를 구동하여 실제로 움직이고, 푸시 바(push bar)를 이용해 물체를 밀었다. 계획 실행 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환경을 다시 인식하고 계획을 수정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37
이처럼 지각, 계획, 행동을 하나의 순환 고리로 통합한 셰이키는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사례였다.40 비록 움직임이 불안정하여 ’셰이키(Shakey, 덜덜 떠는)’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38, 그 기술적 유산은 현대 로봇공학과 AI 시스템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2 최적 경로 탐색의 탄생: A* 알고리즘
셰이키가 실제 공간을 자율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실용적인 요구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근본적인 알고리즘 혁신으로 이어졌다. 복잡한 환경에서 장애물을 피해 목표 지점까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문제는 셰이키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8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피터 하트(Peter Hart), 닐스 닐슨(Nils Nilsson), 버트램 라파엘(Bertram Raphael)은 A* (에이스타) 탐색 알고리즘을 개발했다.38
A* 알고리즘은 ’최상 우선 탐색(best-first search)’의 일종으로, 단순히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경로만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으로부터 현재까지 이동한 실제 비용과 목표점까지 남은 예상 비용을 모두 고려하여 최적의 경로를 찾아낸다.43 A*의 혁신은 바로 이 두 가지 정보를 결합한 평가 함수 f(n)에 있다.43
f(n) = g(n) + h(n)
- g(n): 시작 노드에서 현재 노드 n까지의 실제 경로 비용(이미 이동한 거리).
- h(n): 현재 노드 n에서 목표 노드까지의 예상 비용을 추정하는 ‘휴리스틱 함수(heuristic function)’. 이 함수는 실제 비용을 절대 과대평가하지 않는 ’허용 가능(admissible)’해야 최적의 해를 보장한다.
이 평가 함수를 통해 A* 알고리즘은 무작정 모든 경로를 탐색하는 대신, 가장 유망해 보이는 경로를 우선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셰이키의 구체적인 항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A* 알고리즘은 ’완전성(completeness, 해가 존재하면 반드시 찾음)’과 ’최적성(optimality, 찾은 해가 최적임을 보장함)’이라는 강력한 특성 덕분에 범용적인 알고리즘으로 자리 잡았다.45 오늘날 A*는 비디오 게임 캐릭터의 길 찾기부터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경로 안내, 네트워크 라우팅에 이르기까지 경로 탐색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43 셰이키 프로젝트는 로봇공학이라는 응용 분야의 현실적인 제약이 어떻게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 발전을 촉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6. 결론: 한 시대의 마감과 미래의 씨앗
1960년대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추상적인 개념의 틀을 깨고 현실 세계에 구체적인 형상으로 등장한, 실로 기념비적인 10년이었다. 이 시기 동안 AI는 공장 조립 라인을 혁신하는 산업용 로봇(유니메이트)으로, 특정 분야에서 인간 전문가의 능력을 뛰어넘는 전문가 시스템(덴드랄)으로, 인간과 대화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챗봇(엘라이자)으로, 그리고 스스로 보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자율 로봇(셰이키)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AI가 더 이상 공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학적, 과학적 탐구 분야임을 세상에 증명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취의 이면에는 깊은 성찰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 공존했다. GPS가 직면한 조합적 폭발의 문제는 순수한 논리만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음을 시사했고, “퍼셉트론“이 제기한 XOR 문제는 단순한 신경망 모델의 근본적인 한계를 폭로하며 연결주의 연구에 긴 침체기를 가져왔다. 1960년대 초반의 무한한 낙관주의는 10년의 끝자락에서 보다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다가올 첫 번째 ’AI 겨울’의 전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의 유산은 실패로 귀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탄생한 개념과 알고리즘들은 미래 AI 발전의 씨앗이 되었다. 지식 표현, 휴리스틱 탐색, 계층적 시스템 아키텍처, 그리고 신경망과 같은 아이디어들은 비록 당시의 컴퓨팅 파워와 기술 수준으로는 그 잠재력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했지만, AI가 나아가야 할 다양한 경로를 제시했다. 셰이키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A* 알고리즘이 오늘날까지도 핵심 기술로 사용되는 것처럼, 1960년대의 연구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담고 있었다. 결국 1960년대는 AI의 한 시대가 마감된 시점이 아니라, 훗날 백프로퍼게이션(backpropagation)과 같은 새로운 알고리즘과 폭발적인 컴퓨팅 성능의 발전에 힘입어 다시 부흥하게 될 모든 현대 AI 기술의 근본적인 토대가 마련된,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시작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7. 참고 자료
- History of AI: Part II — The Leap to practical applications (1960s) | Fetch.ai - Medium, https://medium.com/fetch-ai/history-of-ai-part-two-the-leap-to-practical-applications-1960s-f2cb912cfaf5
- History of Artificial Intelligence - Swiss Cyber Institute, https://swisscyberinstitute.com/blog/history-artificial-intelligence/
- The birth of Artificial Intelligence (AI) research | Science and Technology, https://st.llnl.gov/news/look-back/birth-artificial-intelligence-ai-research
- 1954- Birth of an Industrial Robot in the US | History | Kawasaki Robotics 50th Anniversary, https://robotics.kawasaki.com/en1/anniversary/history/history_01.html
- NIHF Inductee George Devol Invented the Industrial Robot, https://www.invent.org/inductees/george-devol
- Unimate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Unimate
- What is the history of artificial intelligence (AI)? | Tableau, https://www.tableau.com/data-insights/ai/history
- Unimate - The Robot Hall of Fame, http://www.robothalloffame.org/inductees/03inductees/unimate.html
- Joseph Engelberger and Unimate: Pioneering the Robotics Revolution, https://www.automate.org/robotics/engelberger/joseph-engelberger-unimate
- General Problem Solver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Problem_Solver
- General Problem Solver | computer model -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science/General-Problem-So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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